용안면사무소에서 지척인 중신리에 있는 삼세오충렬사는 조선조 500년 동안 최대의 국난인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병자호란을 거치며, 부자와 손자삼대에 갈쳐 나라를 위해 싸우다 목숨을 바친 다섯 분의 순국영령을 모신 곳이다. 이곳 출신의 해주오씨 오응정, 오욱, 오직, 오동량, 오방언이 그들입니다. 현재도 후손인 오 씨들이 용안면 신리에 집성촌을 이루며 살고 있습니다. 법성마을에도 오씨들이 모여 살고 있는데, 지역 주민들의 말에 따르면 오충렬사에 모셔져 있는 오응정 일가는 순풍마을 출신이었다고 합니다.
석동공소는 그 뿌리가 지금으로부터 100년을 훌쩍 거슬러 올라갈 만큼 유래가 깊습니다. 그 시초는 강경을 오가며 방물 장사를 하던 마리아 자매가 1885년 석동에 초가집을 마련하고 신자들을 모으기 시작하면서부터입니다. 그 후 1895년 전주성당(현 전동성당)의 보두네 신부에 의해 공소가 설립되었고, 1938년 성당으로 승격되었습니다. 현재 건물은 1955년 새로 개축한 것입니다. 석동공소는 1960~70년대 까지만 하더라도 500여 명의 신자들이 찾을 정도였지만, 현재는 60~70여 명의 신자들이 믿음을 이어가고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한 때 본당이었던 명성에 걸맞게 지금도 건물은 깨끗하게 잘 관리되어 보존되고 있습니다.
동 헌을 지나 조금 더 올라가면 최초의 갈림길이 나옵니다. 그 중 오른쪽으로 빠지는 길이 용안향교로 가는 길입니다. 용안향교는 고려 공양왕 때 최초로 창건되었다고 전해지는 유서 깊은 향교입니다. 향교는 당시 정신문화의 상징입니다. 그곳에서 우리 조상들은 유교 선인들의 위해를 모시고 제사 지내며 마음을 다잡고, 공부에 정진했습니다. 향교가 있는 마을은 마을 이름은 '교동' 이라 부르며, 자부심을 숨기지 않았습니다. 앞으로 펼쳐질 바람과 길이 설레더라도 기왕이면, 꼭 동헌과 향교를 들러 옛 선인들의 발차취를 더듬어 보고 가시기 바랍니다.
자명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 17교구인 금산사의 말사로 법성리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법성마을에서 교동리로 넘어가는 고개마루에 대웅전과 칠성각, 요사채가 단정하게 앉아 있는 곳이 바로 자명사입니다. 비구니 사찰로 비구니 스님이 정갈하게 다듬고 가꾼 경내 화단이 제일 먼저 사람을 반기는 곳이기도 합니다. 자명사라는 이름에 대해서는 여러 전설이 전해져내려오고 있는데 한 가지 확실한 건 소와 관련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자명사가 자리한 산의 이름인 우수산과 우슬산 모두 소 우(牛)자가 들어간다는 점이 이를 뒷받침합니다.
용안동헌은 무학산-용두산 등산로의 첫 이정표가 시작되는 지점에 있습니다. 홍살문을 통과하고 나면 오른쪽으로 정갈한 한옥건물이 나오는데 바로 용안동헌입니다. 동헌은 수령이 고을을 다스리던 공간으로 그리 크지 않은 규모지만 다양한 건축적 요소를 통해 구현된 위엄이 아직까지 꼿꼿합니다. 동헌 앞마당엔 관찰사 선정비, 현감 선정비, 불방비 등 수 십 개의 커다란 비석이 좌우로 도열되어, 이곳의 만만치 않은 역사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삼송정은 조선 전기의 문신이자 당대의 학자인 서거정이 <용안>이 라는 시를 남긴 곳이라 전해집니다. 삼송정은 인근 법성리에서 약 500여 년 전부터 뿌리를 내리고 사는 천안 전 씨들이 지은 정자입니다. 용의 몸통 부분에 해당되는 용두산과 무학산 줄기의 한 가운데, 금강이 한눈에 바라다 보이는 풍광 좋은 곳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삼송정은 1987년 엄청난 폭우로 유실되었지만, 현재까지 종중에서 현판을 잘 간직해오고 있습니다. 또한 문중에 그 내력이 남아 있어 조만간 다시 지을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