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학산은 근방 지역의 주산(主山)이자 모산(母山)입니다. 산 정상에서 내려다보면 서쪽으로는 금강이 굽이쳐 흐르고, 동쪽으로 푸른 들판을 건너 멀리 미륵산이 보입니다. 이런 아름다움 때문인지 <용안읍지>에는 무학산을 주제로 하는 두 편의 시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도거원과 박금의 시가 그것입니다. 또한<용안현읍지>에는 무학산 아래 북쪽 산기슭에 살았다는 장원적에 관한 짧은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처럼 무학산은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는 용머리고을의 중심 산입니다.
칠성산은 무학산의 뒷편에 있는 나지막한 산입니다. <용안현읍지>에는 '무학산 뒤에 산기슭에 옛 석불이 있다. 박동상의 시에 돌로 만든 귀신의 환상이 마음에 나타나 낭떠러지에 두 불상을 새겼다. 산기슭의 바위에 사람의 형상과 같이 도끼로 얼굴을 정교하게 새겼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지금 이 석불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현재는 금강에 둑을 설치해 물길이 약간 변했지만, 둑에 쌓기 전 만해도 칠성산까지 금강 연안에 맞닿아 있어 그 경관이 매우 뛰어났다. 사람들은 칠성산 아래에 금강을 '칠산(七山)바다' 라고 불렀습니다.
은입산은 무학산의 동편에 자리하고 있는 나지막한 산으로 신은마을을 감싸고 있습니다. <용안현읍지>에는 '은팔산'이라는 이름으로 전해지고 있기도 합니다. 산은 그 산세가 마치 여자의 손길과 같이 부드럽게 퍼져 있는 데다가, 금강변과 어울리는 풍경이 특별히 수려합니다. 산의 경치가 매우 뛰어나 예부터 시인 묵객들이 많이 찾았다고 전해집니다. <용안현읍지>에는 '은팔산(은입산)'을 주제로 하는 시 두 편이 전해내려 오고 있습니다. 이 시를 지은 사람에 관해서는 여러 기록이 다른데 <용안현읍지>에는 김남중과 이규라고 기록 되어 있고, <용안구지>에는 조선숙종조의 문인 이재와 김중남이 남겼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용두산은 인근지역의 주산(主山)인 무학산에서 시작된 줄기가 금강과 만나 끝나는 시점, 혹은 금강으로부터 산줄기가 시작된 시점에 있는 산입니다. 산의 형상이 높고 길게 굽어 있어, 그 모양이 마치 금강의 물속으로 빠져 들어가는 용의 머리처럼 생각다고 하여 용두산(龍頭山)이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용두산은 금강과 맞닿아 전망이 좋을 뿐만 아니라 인근의 다른 산에 비해 접근성도 좋아 소풍지로 인기가 아주 많았습니다. 용안 일대의 학교 뿐만 아니라 인근 강경, 함열 등지의 중학교, 고등학교에서도 볕 좋은 날이면 학생들이 금강변을 따라 길게 줄을 이어 용두산을 올랐다고 합니다. 한창 소풍 철에는 먼저 와서 좋은 자리를 차지하려는 경쟁도 치열했다고 합니다.